저자: 조정래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P.36

 

주제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왜 그 주제를 선택했는가? 바로 이 시점에서 그 주제를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을 쓸 때마다 또는 무엇을 쓸지에 대한 고민하다 보면 항상 부딪히는 관문이다. 조정래 작가는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 이 문구는 뒤집으면 왜 작가가 되려고 하는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라고 되묻는 것 같다.

의식이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플롯이 탄탄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정래 작가는 삼다를 하라 한다. 특히 삼다는 읽은 시간만큼 생각하고 읽고 생각한 만큼 쓰라는 얘기다.

 

“삼다(三多)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4:4:2)” - P.47

 

내 사춘기 우리 집엔 톨스토이 전집, 도스토옙스키 전집, 펄 벅 전집, 헤밍웨이 전집, 한국문학전집,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삼국지, 대망 등등 거실부터 2층 계단까지 빼곡 전시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추리소설에 미쳐있던 나는 중학생부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그 책들을 다 읽었고 소위 꼭 읽어야 하는 책들이라는 것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다. 데미안이나 좁은 문 같은 것도 이해가 되든 말든 그냥 읽었다. 그땐 그 책들을 다 읽어야지만 어른이 된다고 믿었고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것이 다다. 재수할 땐 당연히 책을 멀리했고, 대학생이 되어선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나 데일 카네기 같은 자기계발서에 심취했기에 문학을 멀리했다. 가끔 서점에 들러 고전이나 명작들 앞에서 그때의 향수를 맡으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무슨 내용이더라? 이 책의 주제가 뭐지? 하고 자문하는 데 있다. 부활의 카츄샤와 테스가 겹쳐 보이고 나중엔 주홍글씨의 헤스터가 여기서 잠깐! 내가 누구라고?’ 의심하는 눈길로 냉랭하게 보면 난 방어한다. ‘, 몰라. 몰라. 어쨌든 난 읽었어. 사시의 카츄사와 겁나 미인인 테스가 겁탈을 당해 인생이 암울하고 헤스터 넌! 비굴한 목사와 바람난 유부녀야그리곤 급히 그 자리를 떠난다.

 

몇 달 전, 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만들고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을 빌렸다. 그 시절의 나를 대면하는 것 같아 묘하게 설레고 반갑다.
조정래 작가의 말씀처럼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읽었던 시간만큼 음미할 것이다.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주제의 형상화는 잘 이루어졌는가?

사건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이 나고 필연적인가?

구성의 허술함이나 무리는 없는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살아 있는가?

문체(영상이라면 장르를 말할 것이다. 혹은 전개방식의 톤)의 특성은 무엇인가?

감각과 묘사력은 특색이 있는가?

결말 처리는 효과적이었는가?

소설(드라마)로서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 P.104 (황홀한 글 감옥)

 

음미가 끝났으면 습관대로 책에서 발견한 단어나 표현들을 국어사전 펼쳐 개념을 적확하게 터득하여 나만의 표현단어장에 옮겨 적는다.

 

저자: 메이슨 커리

 

“한 작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느냐로 결정. 소설(극)은 인물 창조와의 싸움이다.” - P.123 (황홀한 글 감옥)

 

이 문장이 내 정수리를 콕 쥐어박는다. 지금 쓰려고 하는 글과 대본에도 캐릭터들이 나를 확 매료시키지 못해서 더더욱 그리 느낀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끌어당길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기다린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면 벌렁 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 161명의 현재 존재하거나 존재했었던 독특한 캐릭터들이 있다. 거기다 그들을 아끼고 살피는 연인, 가족, 친구들까지 자기를 봐 달라고 손짓 몸짓을 하는 것 같다.

황홀한 글 감옥은 비장한 결의를 다지게 하지만 리추얼은 그들의 삶을 넋 놓고 구경하게 만든다. 자유롭고 시크한 윌라 캐더, 밤새 45분 간격으로 수분을 섭취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가난한 신혼부부였던 조너선 프랜즌 부부특히, 제임스 패럴과 그의 약물 중독을 극복하게 도와준 클레오 파투리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은 열정, 신념, 그리도 믿음이다. 이들에게 나를 투영해 본다.

, 나 자신을 신뢰하는가? 작가로서의 열정과 신념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들을 잘 관리해서 절제하여 작품에 녹이고 있는가? 한숨만 나온다.

 

조정래 작가는 말씀하신다.

 

“좋은 작품을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 그것이 나의 영토이며, 내가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라고…”

 

다시 나를 다독인다.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듣는 노래  (0) 2019.08.20
작업실  (0) 2019.06.24

+ Recent posts